거장 리들리 스콧의 신작
당신이 <로빈 후드>를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칸 영화제 공식 개막작, 고통 받고 어지럽던 시절에 나타난 영웅을 다룬 시대물, <글래디에이터> 이후 대작 시대물에 등장한 러셀 크로우 주연작, 리들리 스콧 감독.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로빈 후드>에 대한 기대치의 상당수는 단연 리들리 스콧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파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칸 개막작도 리들리 스콧이라 가능한 것이고, <글래디에이터>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니까 다 비슷한 이유들인가).
리들리 스콧이란 이름은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친숙할 것이다. 이 이름이 나에겐 언제부터 친숙했었는지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니 1980년대 중반 비디오로 이런 저런 영화를 빌려 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 묻은 돈으로 비디오를 빌려보던 내가 적지 않은 나이가 된 현재, 리들리 스콧은 헐리우드 주류 영화의 정상에 여전히 서 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화려한 흥행 등으로 우리의 관심을 받다 조용히 사라진 감독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 엄청난 경쟁사회인 헐리우드에서, 1970년대부터 지금 2010년까지 쉼 없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영화적인 즐거움을 주다니 (리들리 스콧은 1937년 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74세다). 물론 흥행도 성공적 수준을 이어갔으니 지금까지 주류의 정상에 서 있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의 필모는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수준이다.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 <블랙 호크 다운> 같은 전쟁, <델마와 루이스>, <지 아이 제인> 같은 드라마, <블랙 레인>, <아메리칸 갱스터>같은 느와르, <킹덤 오브 헤븐>, <글래디에이터>같은 시대물. 필모를 보면 놀라운 수준을 넘어 경이롭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때로는 상업영화로, 때로는 예술영화로 우리에게 영화적 재미를 주고, 세계영화계의 트랜드를 선도하는 리들리 스콧이 2010년 <로빈 후드>라는 대형시대극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와 이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러셀 크로우와 함께.
로빈 후드가 아닌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이야기
<로빈 후드>의 시대적 배경은 바깥으로는 십자군 전쟁의 후유증과 프랑스의 적대적인 침략욕으로 인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안으로는 부패한 정권 아래에서 과중한 납세에 시달리며 인간으로 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던 13세기 영국이다. 이 혼란기는 바로 중앙집권형과 지방분권형의 충돌의 시기였으며, 왕권과 신권이 갈등하던 시대다. 이런 암흑 속에 나타난 인물 로빈 후드는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시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로빈 후드>가 기존에 로빈 후드를 다룬 작품들과 다른 점은 영웅의 활약을 담기 보다 과정을 담은 점이다. 영화는 의적으로 유명한 로빈 후드의 무용담을 담은 것이 아닌, 평범한 궁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부패한 정권에 맞선 영웅이 되었는지, 그가 가진 대의명분의 출발점은 어디였는지에 포커스를 맞추며, 로빈 후드가 아닌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이야기를 그렸다.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이야기는 더 이상 왕이나 지방군주에게 구속되거나 의존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한 남자의 이야기였으며, 그가 가진 용기와 자유를 향한 꿈에 대한 이야기다.
복고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진 전투장면
<로빈 후드>가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점이 영화 내용적으로 흥미로웠다면, 영화 제작적인 면으로 본다면 그 표현법이 굉장히 복고적이란 점이 인상적이다. <로빈 후드>도 분명 대형 블록버스터답게 다양한 CG가 동원되었지만, 기본적인 영화문법은 헐리우드의 클래식한 대형영화 문법과 유사하다. CG 등으로 인원을 대폭 늘려서 만드는 요즘의 스타일과는 다른 실제 전투수준의 인원 동원을 통한 전투를 카메라에 담아냈으며, 그 영상의 스케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볼거리를 위해 몇 배로 과장되게 CG를 사용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 리들리 스콧이 선택한 이런 연출에선 예전 헐리우드 영화의 향수가 느껴진다.
리들리 스콧이 현실적인 수준의 전투장면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에 집중된 그의 내공은 수십 년 동안 다져온 장인의 장르적인 연출의 수준이란 이런 경지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수준이다. 현실적인 묘사로 만들어진 전투장면에서의 섬세함은 여타 영화들과 수준이 다르며, 그 울림의 진동에선 다른 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맛이 느껴진다. 역동성이 느껴지는 카메라의 움직임에선 지금 내가 전투의 중심에 선 듯 느낌을 주며, 당장이라도 나에게 활이 날아올 듯한 그런 긴박감 넘치는 느낌을 전해준다 (전투장면의 파워풀한 느낌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느낌과 유사하다).
이런 선택들에서 느껴지는 점은 리들리 스콧이 자신이 만든 영화는 규모로 풀어가는 영화가 아닌, 이야기의 힘으로 풀어가는 영화라고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영웅의 화려한 면이 아닌 현실성이라 이야기 하며, 자신이 지금 만드는 이야기를 신화가 아닌 역사로 바라보길 원했다. 그리고 감독은 그것을 위한 연출의 선택이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설명한다.
거장의 솜씨를 극장에서 느끼시길 바란다
리들리 스콧이 지난 세월 동안 다져온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와 장르적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준 영화 <로빈 후드>. 영화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 역시 존재한다. 그것은 140분이라는 시간의 그릇에 담기엔 감독의 이야기가 너무 크다는 점. 영화는 이런 단점 때문에 아쉽게 넘어가는 설정도 보이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전개도 보인다.
하지만 <로빈 후드>는 이 단점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정도로 영화의 힘이 있다. 이야기와 규모가 조화로우며, 균형적이다. 리들리 스콧은 자신의 이야기의 틀을 명확히 세운 후에 규모를 더했으며, 탄탄한 기초공사 위에 더해진 배우들의 포진은 그 공사의 규격을 더욱 크게 해준다.
서구사회, 좁게 보면 영국 등에서 로빈 후드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혼란스럽고 어렵던 시절에 나타난 영웅 로빈 후드의 활약은 마치 우리나라의 홍길동을 연상케 하며,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한 증거는 없지만, 이런 영웅적인 면들 때문에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 로빈 후드. 거장은 이 선택을 통해 새로운 10년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제 CG 중심이 아닌 스토리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패러다임. 2000년도에 <글래디에이터>로 새로운 세기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모습처럼 말이다.
거장의 손길로 만들어진 이 풍성한 시대극의 만찬을 꼭 대형화면으로 즐기시길 추천하고 싶다. 이런 영화를 대형화면에서 못 보고, 가정에서의 작은 화면 (심지어 컴퓨터 캠버전으로 보는 분도 있으니) 으로 보는 건 너무나 아쉬움이 큰 선택이라 생각한다. 거장 리들리 스콧의 녹슬지 않은 영화적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는 영화 장인이 만든 사람과 말, 칼과 활의 향연 <로빈 후드>. 극장에서 꼭 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차기작 중 하나는 <에이리언 5>이다. 4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닌 1편 이전의 시간대를 다룬 프리퀼 성격의 영화. 게다가 3D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리들리 스콧의 멈추지 않는 창작욕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삶이란 바로 리들리 스콧을 두고 하는 말 같다.
★★★☆
*2010년5월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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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높아지는 필력에 저절로 감탄사만 나옵니다. 왠만한 관련 잡이 리뷰보다 훨씬 낫네요. 건필하세요~^^/
2010/05/13 11:46그저 끄적대는 수준인데요. 요즘에는 하는 일이 좀 바뻐 리뷰를 많이 못 하는 게 좀 아쉽더라구요. 많이 해야 더 늘텐데...ㅜ.ㅜ
2010/05/14 12:36오옷~ 황금펜을 다셨네요. 이건 거의 90%이상 하쿠님 탓인듯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
2010/05/15 08:59ㅋㅋㅋ 축하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쿠님에게로 ^^*
2010/05/15 16:07다들 관심 가진 덕이죠. 저는 그저 끄적였을 뿐 입니다. 좀 더 걸릴 거라 여겼는, 예상보다 빨리 준 건 저도 좀 의외입니다. 근래 관심순위에 있었던 건가...^^;
2010/05/15 18:28공상과학소설에 빠져살던 어린 시절에 절 온전히 지배했던 영화가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과 리들리 스캇 감독의 '블레이드 런너"였죠. 절 실망시킨 적이 없던 명장의 작품이니 이번에도 말씀처럼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네요. 뻘소리지만 이 분의 영화를 가장 마초스럽게 느꼈던 이유가 항상 주인공이 총이나 활을 들고 다니며 쏴대는 얘기라서 였다는..^^;; 깔끔하고 알찬 리뷰를 잘 보고 갑니다.
2010/05/16 09:45전 <브라질>은 어려워서 볼 때마다 버거워 합니다...^^; 그에 비해 <블레이드 러너>는 예전에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극찬을 한 라디오 방송 이후 다시 보니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에이리언>을 최고로 치는데, 얼마 전 다시 보니 역시 대단하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리들리 스콧은 너무 일찍 거장에 오른 분이죠.
2010/05/16 22:25저는 개인적으로 리들리 스콧이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몇 안될거 같은 사람 중에 한명인데요. 님의 리뷰는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게 만드셨네요 ^^
2010/05/16 10:55사람에 따라 관점은 다르고, 해석은 다를 수 있는 거죠. 전 개인적으로 <다크 나이트>를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 안하지만, 세기의 걸작이라는 하는 분들이 대다수인 현실을 보면 사람마다 관점은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2010/05/16 22:27다만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평가해 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홈시어터가 좋다고 해도 극장에서 만난 영화는 집에서 만난 것과 너무 다르니까요.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2012/05/09 03:11어디?
2012/05/09 07:53관심 없습니다.
2012/05/11 05:12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2012/05/11 10:56